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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주문제, 고조선은 3개소에 3개가 있다. 어느것이 진짜인가?
조회 : 13        작성자 : 유우찬    [ hanbark33@daum.net ]  [ http:// ]

16주문제 고조선은 3개소에 3개가 있다.

 

, 중의 역사기록대로 하면 고조선은 3개소에 3개가 있다. 필자의 저서 여러 권에서 몇 개씩을 골라 간단하게 살펴본다.

 

1). 고조선의 건국개요:

 

1. 기록발췌

사기권6 본기12.

기록에 이르기를 조의 반절음은 조()이고, 선의 음은 선()이다.

(朝鮮)(正義) : 曁其記反朝音潮 鮮音仙

 

사기 권69 열전2

조선(朝鮮)조수(潮水)와 선수(仙水) 두 강의 이름에서 된 것이다.

 

조선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6권 평안도평양부 郡名 .

조선(朝鮮):

사기 주() 색은(索隱)에 조()는 음이 조()이고, ()은 음이 선()이니 선수(鮮水)가 있음으로 이렇게(조선이라고) 부른 것이다.”

 

환단고기 단군세기 기록

왕검이 불함산(不咸山) 밝달나무에 내려왔다. 서울을 아사달(阿斯達)이 설치하고 나라를 조선(朝鮮)이라 했다.

 

무진년 제요도당 때 단국(檀國)으로부터 아사달 단목터에 이르러 천제(天帝)의 아들로 모시게 되었다. 개천 1565년 상월 3일에 왕검이 오가의 우두머리로서 800인의 무리를 이끌고 단목터에 자리잡았다. --- 백성들이 임금으로 삼아 단군왕검이라고 했다. 도읍을 아사달에 정하고 나라를 조선이라 했다.

 

14세에 웅씨왕이 비왕(裨王)으로 삼고 대읍(大邑)을 다스리게 했다.

67년 태자 부루를 파견하여 도산(塗山)에서 우사공을 만나게 했다. 나라의 경계를 정하여 유주(幽州)와 영주(營州)를 우리 땅에 속하게 했다.

 

태백산(太白山)에 단을 쌓고 사자를 보내 제를 올리게 했다.

청해(靑海)욕살 우착이 궁성을 침범하여 단제가 상춘(常春)으로 피하고 새 궁궐을 구월산(九月山) 남쪽 기슭에 창건했다.

 

15세 대음단군 10(BC.1652) 단제가 서쪽 약수(弱水)로 가서 우속에게 금철 및 고유(膏油: 식물 즙의 일종)를 채취하게 했다.

2). 중국서북고조선

 

1. 조수와 선수:

조수(朝水, 潮水): 감숙성 경수

조수.는 기록에 없으며 중국 고지도에서 감숙성 단국의 도읍인 단나(檀那), 고조선의 도읍인 조나(朝那: 고구려 국내성지역)의 남쪽 현재의 경수(涇水).

 

선수(鮮水): 청해성 청해호

청해(靑海)(중국고금지명대사전 P.571): 청해성청해호

하나라 우임금 족속인 서융 땅이다. , , 3대를 거쳐 한나라에 이르러 서강이라 했다. 동진 이후에는 토곡혼 땅이고, 당나라 초에는 토번 땅이다. 17(1927) 국민정부에서 성으로 했는데 치소는 서녕이다. 옛 날의 선수(鮮水), 또 서해(西海), 선해(仙海)

한국인 18-11-02
얼마전 부여 백마강 유람선으로 낙화암을 바라보니 웃슴밖에 저기서 뛰어내려서 삼천궁녀가 죽었다고? 그러면 의자왕의 왕궁터는 어디며 의자왕능은 어디에 있는가??????? 중국 낙양을 처음 방문하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 하나. 바로 백제의 마지막 임금인 의자왕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능묘 1기가 최근 확인 되었다는 것입니다. 의자왕의 무덤은 노래에도 나오는 ‘낙양성 십리허에 높고 낮은 저 무덤’들이 있는 곳, 지금의 중국 허난(河南, 하남)성 뤄양(洛陽, 낙양)시 베이망산(北邙山, 북망산)에 있습니다.(추정) 의자왕은 백제가 멸망한 뒤 중국 당나라 장수 소정방에 의해 1만 2000명의 백제인들과 함께 끌려갔다가 죽어서 북망산에 묻힌 것으로 역사서는 전하고 있습니다. 의자왕과 함께 끌려갔던 태자 융의 지석(지문을 새겨 무덤 앞에 묻는 돌)은 북망산에서 발견되어 현재 하남성 정저우(鄭州)에 있는 하남성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어 의자왕의 무덤도 북망산에 있을 것이라는 유력한 근거가 되고 있습니다. 의자왕은 우리나라 최초로 타국에서 유명을 달리한 왕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의자왕이 당연히 삼천궁녀와 함께 낙화암에서 백마강으로 뛰어 들었을 것으로 짐작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묘의 크기는 높이 7미터 정도의 봉토분(封土墳, 흙을 둥글게 쌓아 올려서 만든 무덤)이며, 유물은 발견되지 않았으나 토양 채취 결과 층위가 의자왕이 서거한 시기(660년)와 일치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답니다. 이러한 사실들은 멸망한 백제 유민들이 당나라에 끌려간 경로를 추정하는 백제 유민 흔적 찾기 사업의 결실을 정리하여 발간한 ‘의자왕과 백제유민의 낙양 행로’ 라는 보고서에 잘 서술되어 있습니다. 삼천궁녀(삼천궁녀가 집단으로 몸을 던져 투신했다는 부여 낙화암을 가본 사람은 그 바위가 위에 몇 명 서있지 못할 정도로 작다는 사실에 실소를 많이 합니다.)와 함께 향락을 즐기다가 나라를 말아 먹은 임금으로 흔히들 기억되고 있는 백제의 마지막 임금인 의자왕. 식민사관의 영향이기도 하고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기에 패자인 백제 의자왕은 좋지 않게 기록될 수밖에 없기에 사치와 패덕으로 백제를 슬픈 망국으로 종지부를 찍게 한 왕으로 오명이 남은 의자왕이지만 태자시절에는 ‘해동증자’로 불리며 효성과 우애로 존경을 받았다고 합니다.
한국인 18-11-03
의자왕의 전투지역   우리나라 역사 교재에는 의자왕(義慈王)이 662년 반도에서 있었던 것 같이 왜곡하나 의자왕이  싸운 곳은 대륙 웅진(熊津) 동쪽 대산(大山;태산(泰山)에서 전투를 하였다. 이는 신구당서(新舊唐書)의 내용과도 동일(同一)하다. 의자왕(義慈王) 패망 때인 662년에는 웅진 동쪽의 대산(大山)으로 구당서(199)와 삼국사(권28)에도 나타내고 있다. 이것은 바로 태산(泰山)으로 함께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음(音)이 같고 모양이 비슷할 때 태산(泰山)을 나타낼 때 태산(泰山)을 대산(垈山)·대산(大山)·태산(太山)· 태산(泰山)을 이중 하나를 사용하는 것에 유의하고 이 산은 하나임을 명심해야 한다. 백제(百濟)의 패망(敗亡)기록은 ‘삼국사기(三國史記)’, ‘삼국유사(三國遺史)’, ‘구당서(舊唐書)’, ‘신당서(新唐書)’가 공통으로 대륙에 있음을 기록하고 있는데 반도에는 없고 대륙에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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